가자 지구에서 16일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야히아 신와르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을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전쟁 발발 이후 공개적으로 그를 “10월 7일 학살의 주범”이라고 선언하고 다른 하마스 주요 지도자 중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인물로 꼽았다. 전쟁 발발 이후 신와르는 이스라엘군과 신베트(이스라엘의 국내 정보기관)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자 지구의 땅굴을 전전하며 지냈다. 그 와중에 주변의 하마스 지도자 및 군 지휘관들이 연이어 이스라엘의 공격에 사망했고, 결국 지난 7월 31일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마저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신와르는 이후 하니예의 자리를 물려받아 가자 지구 지도자 겸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 사실상 하마스의 제 1인자가 됐다. 그는 1962년 가자 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난민촌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 이슬람 대학교에서 아랍어를 전공하고 졸업 직후인 1980년대 초반 하마스에 가담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겠다”는 급진 이슬람주의 이념에 경도된 인물이었다. 하마스의 정보·보안부서를 이끌면서 조직내 이스라엘 협력자를 색출해서 처형하는데 앞장서 ‘칸 유니스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마지막 순간까지 하마스내 과격·강경파의 리더 역할을 했다.
그는 자기 삶의 3분의 1을 이스라엘 감옥에서 보냈다. 12명의 팔레스타인과 2명의 이스라엘 군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1988년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돼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22년을 복역했다. 신와르는 이 과정에서 히브리어와 유대 문화 및 사회를 공부했다. 또 팔레스타인인 죄수들을 선동·결집해 수감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2011년 다른 수감자 1000명과 함께 석방됐다. 2006년 하마스의 습격으로 인질이 된 이스라엘 군인 길라드 샬리트와 교환하는 조건이었다. 하마스로 돌아온 신와르는 한 달 만에 첫번째 아내 아부 자마르와 결혼하고, 하마스의 군사 조직 책임자가 됐다. 2012년부터는 이란혁명수비대(IRGC)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만나며 이란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신와르는 이때 이란의 도움을 얻어 하마스의 전략과 군사 조직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하며 지냈다. 그 와중에 주변의 하마스 지도자 및 군 지휘관들이 연이어 이스라엘의 공격에 사망했고, 결국 지난 7월 31일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마저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 신와르는 이후 하니예의 자리를 물려받아 가자 지구 지도자 겸 하마스의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 사실상 하마스의 제 1인자가 됐다. 그는 1962년 가자 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난민촌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 이슬람 대학교에서 아랍어를 전공하고 졸업 직후인 1980년대 초반 하마스에 가담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겠다”는 급진 이슬람주의 이념에 경도된 인물이었다. 하마스의 정보·보안부서를 이끌면서 조직내 이스라엘 협력자를 색출해서 처형하는데 앞장서 ‘칸 유니스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마지막 순간까지 하마스내 과격·강경파의 리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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