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확전 위기에 조 바이든 행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아랍계 미국인들의 지지 철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치 비영리조직인 아랍아메리칸연구소(AAI)가 아랍계 미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5자 가상 대결 조사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42%로, 해리스 지지율 41%보다 더 앞섰다.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고 답한 사람 중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는 46%, 해리스 부통령 지지자는 42%로 두 후보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는 지난 대선이 열린 2020년 같은 기관이 시행한 조사에서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59%,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35%의 지지를 받은 것과 비교되는 결과다. AAI는 이 설문조사를 지난달 9~20일 실시했다. 헤즈볼라 대원을 향한 무선호출기(삐삐)·무전기(워키토키) 테러 사건은 지난달 17·18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역 공습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폭사 사건은 각각 지난달 25일·27일에 이뤄졌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1%는 ‘가자지구 전쟁이 투표 결정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AAI는 “여론조사 시작 30년 이래로 가자지구 전쟁만큼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준 것을 본 적이 없다”면서 “바이든 정부가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막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한 아랍 커뮤니티의 분노와 절망은 트럼프의 수혜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더해 레바논을 향한 공세 강도를 높이자 여론이 점점 바뀌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일면서다. 이에 해리스 부통령 대신 경쟁 후보를 뽑거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아랍계 미국인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미국 내 무슬림 모임인 ‘미국-이슬람 관계 협의회(CAIR)’가 지난 8월 말 미시간주의 아랍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는 제 3당인 녹색당의 질 스타인 후보(40%)가 해리스 부통령(12%)과 트럼프 전 대통령(18%)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지난달 25일에는 아랍계 주민이 모여 사는 미시간주 디어본 지역에서 약 1000여 명의 주민들이 미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제공해서 이스라엘이 대공세를 펼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레바논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비판했다. 시위에는 레바논 출신 이민자의 자녀이자 민주당 소속 압둘라 하무드 디어본 시장도 참석했다. 그는 “우리는 폭탄으로 모든 학교를 폭격하고, 아이들을 공격해서 산산조각을 내는 그런 정부를 지원하는 미국 대통령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이런 우리의 메시지, 우리의 가치관을 11월 대선의 현장에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내 아랍계 인구 비중은 약 1%로 소수이지만,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합하는 지역에서 이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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