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경과 맞닿은 네팔 중북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대홍수가 발생해 500여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가운데, 과학계에서 홍수 원인이 지진이 아닌 빙하가 스스로 붕괴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네팔 정부는 지진이 발생해 물벼락이 덮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분석 결과 히말라야 산악지대가 지진 없이 스스로 무너진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부 장관이 의회에 보고한 예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전 8시 37분 지진이 났고 3분 뒤 돌발 홍수가 보고됐다. 카날 장관은 “티베트 쪽에서 발생한 지진이 대규모 산사태를 일으켜 보테코시강 흐름을 막았다”고 설명하면서도 “정확한 원인은 더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네팔 수문기상국(DHM)은 일반적인 산사태 직전 주로 관측되는 집중 강수 현상이 재해 지역인 라수와 일대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라수와를 관할하는 나렌드라 파리야르 지방행정관도 중국 신화통신에 “이 지역 강수 기록이 없다”고 했다. 파리야르 행정관은 상류에서 벌어진 자연현상이 물을 밀어냈다고 말했다. 네팔 정부는 이 지역에 비가 오지 않은 점을 근거로 이번 재해 원인을 지진으로 추정했다.
미국 지구물리학회(AGU)가 발행하는 과학매체 이오스(Eos)는 26일(현지시각) 이번 재해 원인을 지진이 아닌 ‘암빙사태(rock-ice avalanche)’로 규정했다. 암빙사태는 고산지대 암반과 그 위에 얹힌 빙하가 한 덩어리로 떨어져 내리는 현상이다. 산사태 분석 전문가이자 지질학자인 데이브 페틀리는 이오스에 붕괴 지점을 북위 28.2765도, 동경 85.5194도로 짚었다. 그는 25일과 26일 위성사진을 겹쳐본 결과 산 정상부 형태가 하루 사이 달라진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홍수가 붕괴 에너지로 녹은 얼음과 무너진 퇴적물이 머금고 있던 수분, 여기에 하천수가 합쳐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 지질조사국(USGS) 역시 같은 날 관측 기록을 바로잡았다. USGS는 네팔 코다리에서 북서쪽으로 55㎞ 떨어진 지점에서 현지시각 오전 8시 37분 처음 에너지 신호를 잡았다. USGS는 이 에너지 신호를 규모 4.4 지진으로 발표했다가, 이후 ‘에너지 신호가 지진이 아닌 산사태에서 나왔다’고 정정했다. 지진이 일어나 산사태가 벌어진 게 아니라, 빙하가 스스로 무너져 내리면서 암석과 얼음이 만든 진동이 지진과도 같은 충격을 일으켰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네팔 현지 연구자들은 빙하가 스스로 무너지기 전까지 산 상류에 자리한 호수가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을 가능성을 아직 접지 않고 있다. 빙하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호수들이 머금은 수자원까지 개입해 재해를 키웠다는 의미다. 란잔 쿠마르 다할 트리부반대 지질학과 교수는 26일 네팔 매체 카바르에 “어느 호수가 터졌는지, 어떻게 터졌는지 지금 단계에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다할 교수는 “이 정도 규모 홍수가 나려면 대형 눈사태와 빙하호 붕괴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봤다. 그는 렌데강 상류 빙하호 세 곳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지목했다.
미국 알래스카페어뱅크스대 연구원 암리트 타파도 같은 매체에 “티베트 쪽 작은 호수들이 최근 몇 년 사이 하나로 합쳐졌다”며 “지난해 홍수 뒤 위성 분석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재해가 발생한 라수와 지역에서는 지난해 8월에도 티베트 쪽 빙하호가 터져 9명이 숨졌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는 이번에 물이 쏟아진 포이추 유역을 빙하호 붕괴에 특히 취약한 곳으로 분류하고 있다.
네팔 국가재난위험감소관리청(NDRRMA)은 위성 영상을 근거로 라수와가디 국경검문소에서 북동쪽 20㎞ 지점에서 눈과 암석이 함께 무너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NDRRMA는 이 잔해가 티무레 마을을 지나 트리슐리강으로 흘러드는 렌데강에 쏟아지며 진흙 섞인 홍수를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같은날 중국 티베트자치구 쪽에서도 산사태가 나 지룽 통상구에서 3명이 숨지고 265명이 실종됐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구체적인 원인 규명이 늦어지는 사이 피해는 계속 늘고 있다. 26일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최소 160명이 숨지고 외국인 341명을 포함해 403명이 실종됐다. 전력 설비도 무너졌다. 다운투어스는 이번 홍수로 네팔 전체 발전 용량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430㎿ 규모 전력 공급이 끊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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